“사익을 위해 잔머리 굴리지 않고 해괴한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28년 간 기자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기자 초년 시절 “에디 가소(니카라과 출신 권투선수)를 일본 선수라 착각하는 무지를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 때문에 매사에 열심히 공부하며 기사를 썼다. 덕분에 그는 늘 ‘학자 같은 모범생 기자’로 통했다.

머리말을 대신한 나의 사망기사

출판국 고승철 전문기자가 28년 간 써온 기사들을 골라 ‘경제와 문화’ ‘삶과 일터’ ‘지구촌 속의 한국, 한국인’ ‘경제의 흐름’ ‘세계사 변혁, 현재 진행형’이라는 5개의 주제로 엮어 책을 냈다. 저널리스트의 이름이 곧 책 제목인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가 기획한 ‘한국의 저널리스트’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시리즈는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그동안 써온 사설, 칼럼, 기사 등을 선별하고 스스로 코멘트를 다는 식의 일종의 언론인 문집이다.

흥미로운 것은 머리말을 대신한 ‘내가 쓰는 나의 사망 기사’(가상 시나리오). 예비지식 없이 무작정 책을 펼친 사람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창간 120주년 기념식(2040년에 동아일보는 창간 120주년을 맞는다)이 나오고, ‘향년 83세 고승철’이라는 대목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할 뿐이다.

권투장갑 대신 펜을 들다

이렇게 수십 년을 앞질러 가던 글은 ‘엉뚱한 계기로 기자가 되다’라는 저널리즘 입문기에서 훌쩍 30여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197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권투. 중학생 때 처음 권투장갑을 끼었던 그는 대학생이 되자 세계챔피언이 수련하는 체육관에 등록하고 직업 복서로서의 가능성을 넘보기도 했다. 그러나 매년 12월에 열리는 신인왕전이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 한 번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고백.

어쨌든 그는 프로복서의 꿈은 접었지만,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고 써대는 엉터리 복싱 중계나 신문기사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저널리스트적인 발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당시 취업시장에서 상한가였던 경영학도가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무역상사도 마다하고 기자가 된 배경이다.

한 저널리스트의 30여년을 160여 쪽에 담아내는 것 자체가 무리한 기획이지만, 부지런히 살아온 선배 기자의 발자국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세월 따라 바뀌는 그의 헤어스타일도 구경하시라.

  기사입력: 2008-05-26 18:21김현미 출판팀장 khmzip@donga.com